민주 계열 정당사 - ② 4·19와 최초의 민주당 정부
4·19와 민주당
4.19 혁명의 주역은 학생과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시민들의 저항을 촉발하는 불씨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무대는 경남 마산이었다. 민주당 마산시당은 선거 당일인 15일 10시 30분에 이미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민주당 간부들이 앞장서고 시민과 학생들이 뒤따르는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시위 군중이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밤 9시에서 밤 8시 ~ 9시 경에는 1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발포함으로써 7명이 사망하고 870여 명이 부상당하는 참극이 발생한다.
3·15 마산 시위가 4·19로 확대되는 결정적 계기는 당시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의 희생이었다. 시위 당일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분노한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재개되어 서울을 비롯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시위에 이어 19일 서울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된 대규모 도심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경무대 진출을 시도하자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지만, 군은 적극적 진압을 포기하여 사실상 정치적 중립을 지켰다. 25일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서울 시내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문이 발표되자 26일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린 것이다.
4·19 혁명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대중의 힘으로 정권을 무너뜨린 대사건이었다. 4·19혁명의 성격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었다.
시위는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비조직적·자발적 운동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4.19 혁명의 큰 자랑거리이자 한계이기도 했다.
학생과 시민들은 조직적 구심점이 없었기에 자신들의 요구와 목표를 실현할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제는 결국 제도 정치권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4.19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그 과제를 다 했는가?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실패한 민주당 정부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살펴보기로 하자.
민주당 정부의 공과
4월 26일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허정 과도 내각이 출범했다. 과도 내각의 과제는 이승만에 의해 파괴된 헌법을 새롭게 개정하고,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었다. 기존의 국회에서 민주당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개헌안이 6월 15일 국회에서 통과되어 공포되었다. 신헌법은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 (참의원, 민의원)을 핵심으로 했다.
새로운 헌법에 따라 7월 29일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민주당은 민 의원 233석 중 175석을 차지했다. 자유당은 민의원 2석에 그쳐 정당 소멸의 운명을 맡게 된다. 4·19로 열린 정치공간에서 혁신정당의 도전이 있었지만 사회대중당 4석, 한국 사회당 1석에 그쳤다.
새롭게 구성된 국회에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한 결과 윤보선이 당선되었다. 윤보선은 같은 구파인 김도연을 국무총리에 지명했지만 국회의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결국 국무총리는 신파의 장면에게 돌아갔다. 내각제 헌법에서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에 그치고, 실질적 권한은 내각 수반인 총리가 갖는다. 장면이 8월 23일 심파 위주의 조각을 마침으로써 장면을 총리로 하는 민주당 정부가 출범했다.
민주당 정부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었기에, 자유민주주의 실현은 정권의 제1차적 과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집회, 언론, 결사, 시위, 정당 결성 등에 대한 제안이 철폐되었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나 정치 참여도 어느 때보다 확대되었다. 이승만 정부 하에서 자행된 선거 부정이나 각종 부정부패 사건을 처리하는 '혁명 입법'이 추진되어,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 반민주 행위자 국민권 제한, 부정 축제자 처리 등이 단행되었다.
다른 한편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민생고의 해결 역시 민주당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민주당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내용으로 국토 건설계획을 수립해 1961년 3월에 발표했다. 하지만 5·16 쿠테타로 말미암아 경제개발 계획은 무산되었고, 민주당 정부는 불과 10개월이라는 단명으로 끝나게 된다.
5·16 쿠테타가 없었더라면, 민주당 정부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룰 수 있었을까? 역사의 가정이기에 쉽게 답할 순 없지만, 후대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시간적·상황적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장면 정부가 집권 세력으로서의 통치 능력과 정책 수행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명의 여파로 민주당 집권 기간 내내 1일 평균 7.3건에 이를 정도로 시위와 데모가 줄을 이었다. 초기에는 혁명 과제의 완수를 촉구하는 민주화 요구가 주를 이루었지만, 시위는 점차 노동 문제, 통일 문제 등으로 확산되었다. 노조들이 새로이 결성되었고, 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노동 쟁위도 증가했다. 대구를 시작으로 교원 노조가 조직되어 전국 교원의 22%에 이르는 2만여 명의 교사가 회원으로 가입했다. 특히 1960년 말부터 학생 및 혁신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반외세 통일운동은 1961년 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4· 19 혁명이 단순한 정치적 민주화 운동을 벗어나서 사회경제적·민족적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것으로 진전되어 갔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운동의 진전에 대항하는 보수 세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우익 천년 조직 및 재향군인회 등의 반격으로 시위들이 서로 충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고, 군부 구테타가 임박했다는 4월 위기설이 떠돌았다.
민주당 정부는 진보와 보수 양층에서 가해 오는 이런 압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민주당 정부는 노동 및 통일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1961년 2월 반공임시특별법 및 데모규제법을 제정하고 대모 규제법 제정을 시도함으로써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결정적으로는 공공연히 떠돌던 군부 구테타 모의를 차단하지 못했고, 실제 쿠데타가 발발하자 이를 진압하는 제압하는 어떤 효과적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신구파 간 접대감 때문에 쿠테타를 쿠데타를 방조 내지 묵인했다는 의혹까지 자초했다.
결국 민주당 정부는 4.19혁명의 뒤따른 정치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서 통치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이로 인한 정치적 혼란은 군부의 정치 개입의 빌미를 제공했다. 민주당 정부가 단명으로 끝난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혁명이 불러온 사회적 혼란, 혁명 이후 경찰·공무원 숙정에 따른 정부 통제력의 약화, 군부 개입의 빌미를 제공한 학생 및 혁신 개입 급진 노선, 4·19 이전부터 쿠데타를 계획해 왔던 군부의 정치적 야욕 등등. 하지만 우리가 강조하고 반성해야 할 요인은 민주당의 파벌 다툼과 그로 인한 정부 마비이다.
7·29 총선 이후 권력이 눈앞에 다가오자 이를 둘러싼 당내 파벌 다툼이 극한으로 전개되었다. 수적 다수를 점한 구파는 대통령직과 국무총리직을 독식하려 했고, 열세였던 신파는 국무총리직을 차지하는 데 힘을 집중했다. 신파의 전략이 승리하여 국무총리직은 신파의 장면에게 돌아갔다. 조각의 주도권을 쥔 신파는 내각에서 구파를 전면 배제했다. 민주당 정부는 사실상 민주당 신파의 정부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자 구파는 8월 31일 민주당 구파 동지회라는 별도의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장면 정부의 정책을 사사건건 공격했다. 구파는 9월 22일 신당 발족을 선언한 데 이어, 12월 14일 신민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구파의 일탈 이후에도 당내 파벌 다툼은 계속되었다. 내각에 들어가지 못한 소장파 의원들은 소장파 동지회를 따로 구성했고, 구파에서 심파로 합류한 집단 역시 정안회를 만들었다. 노장파와 소장파, 정안회 등은 내각의 자리를 두고 다투기 바빴다. 1960년 8월 조각 이후 10개월 동안 세 번의 개각이 있었고, 각료의 평균 재임 기간은 2개월에 불과했다. 이런 조건에서 안정된 정부 운영이나 통치 능력을 기대하기란 예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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